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막스 호프만 (문단 편집) === [[제1차 세계 대전]] === 당시 중령이자 [[장군참모]]과정을 밟고 있었던 호프만은 제 8군의 참모장으로 동부전선에 배치되어 있었다. 동부전선에 전세는 이미 러시아군에게 넘어가 있었다. 이때 이미 러시아 2군에게 동프로이센의 일부를 내어준 상태였고, 사령관 [[막시밀리안 폰 프리트비츠]]는 사실상 패배했다는 분위기였다. 하지만, 제8군은 전 사령관을 제외하고는 지휘부가 딱히 패배했다는 분위기에 지배당하지는 않았고, 신임 사령관 착임 전의 공백기를 활용해 제8군 작전참모 호프만은 후속 작전계획을 짜놓게 된다. 언뜻 보면 말도 안 되어 보이는 작전계획으로, '''1개 사단'''으로 북부의 러시아 제1군을 막는 동안 나머지 병력으로 남방의 제2군을 때려잡는다는 것이다. 이게 바로 [[타넨베르크 전투]]이라는 전세를 뒤집을만한 작전을 세웠다. 보통 힌덴부르크의 공으로 알려져 있지만, 사실 호프만이 계획하였다. 여기서 [[에리히 루덴도르프]][* 참고로 루덴도르프는 호프만과 이웃으로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.]가 힌덴부르크의 작전을 버리고 호프만의 작전을 사용한 것도 관여했다. 그렇게, 호프만의 계획으로 빼앗긴 프로이센의 영토를 되찾을 수 있었다. 이후 호프만과 함께 타넨베르크 전투의 승리를 이끌었던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는 제9군을 지휘하게 되었다. 제9군에서도 그들은 동프로이센의 빼앗긴 영토를 다 찾아왔고, 호프만은 힌덴부르크를 전쟁영웅으로 만드는데 공헌했다. 호프만은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와 함께 [[에리히 폰 팔켄하인]]을 참모총장자리에서 해임시키려는 장성 중 한명이었다. 힌덴부르크의 후임으로 [[레오폴트 폰 바이에른]]이 임명되었을 때, 호프만은 8군의 참모장 자리에 남았고, [[장군참모]] 과정을 거친 뒤 소장으로 진급하였다. 동부전선에서 승리 이후, 호프만은 잠깐의 휴식기를 가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